[스포일러]
남친없는 동생과 오랜만에 영화를 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에 있던 샘소나이트 비즈니스 백팩의 환불요청을 동생에게 부탁한 대가로 토요일 점심과 영화표를 바쳤다. 내가 가진 카드로 대한극장의 어떤 할인 혜택도 받지 못한채.. 13년 12월 31일 개봉했다던 뜨끈뜨끈한 신규영화를 본 것이다.
먼저 영화제목, 포스터와 예고편에서 보여지듯 이 영화는 판타지가 아니다. 관객의 기대를 의도적으로 빗나가게 할 계획이었다면 이 마케팅은 꽤나 성공한듯 보인다. 훈훈한 결말에 판타지가 아니었다고 투덜댈 사람도 없을 것 같고...
즉, 영화제목이 말하는 것은 월터의 능력이 아닌 그의 삶에 대한 서술이다.
우선 윌터는 어렸을 적, 모히칸 헤어스타일의 스케이트 보더로 또래 아이들에게 꽤나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
더불어 그의 아버지도 닭벼슬 옆, 밀려야될 털을 손수 밀어주셨다니 친밀한 관계였던 아버지의 죽음 후, 어린 월터의 삶의 정신적, 현실적 방향전환은 당연한 듯 보인다.
그로부터 20년, 스케이트 보드를 쥔 사진 속 자신의 모습에서 더 이상 자신을 발견할 수 없는 윌터는 도무지 상상의 늪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한대 때려주고 싶은 상사의 멱살을 잡아 업어치기를 하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섹시한 멘트를 날리는 것은 그의 상상속에서만 가능하다.
다시말해, 국어에서 상상이란 단어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다 윌터의 상태에 맞게 교정하자면 윌터는 망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가 사진 에디터라는 직업을 16년 동안 꽤나 성실하게 지켜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속해있던 회사 잡지, 'Life'의 전설의 사진작가 숀에게도 꽤나 인정받는 동료라는 점이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영화내내 숀, 한 사람 밖에 없지만.
아무튼 윌터는 그의 부하직원에게 인정받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명의 부하직원을 둔 팀장이다.
영화는 'Life'의 폐간을 앞두고 숀이 보낸, 그러나 발견되지 않은 마지막 잡지 커버사진을 찾는 과정을 그려간다. 그 속에서 월터는 원치 않았지만, 그린랜드, 아이스랜드, 히말라야 등을 숀의 뒤를 쫓아 한걸음 한걸음 걸어 간다. 딱, 그만큼 상상을 정지한채.
마침내 숀을 만난 윌터는 마지막 사진에 대한 행방을 묻고, 잠시 숀 곁에서 그의 작업현장을 엿보게 된다.
숨죽이며 기다렸던 유령표범이 나타난 최고의 순간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는 숀의 손가락에 의구심을 던지며최고로 아름다운 순간엔 그냥 머무르고 싶다는.. 머무르고 싶어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는 숀이 윌터는 신선하기만 하다.
영화의 마지막, 결국 윌터는 숀의 마지막 사진을 찾아 책임감 있게 회사에 제출하고 예정대로 해고된다.
좋아하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고 다가가 이름을 부르는 월터, 상상대신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하는 윌터,
이제 더이상 상상은 현실을 지배하지 못한다. 다만 현실이 되었을 뿐.
신문 가판대에 전시된 'Life'의 마지막 커버사진을 보며 월터는 놀라는데... 16년간 전화로만 통화한 최고의 사진작가 숀이 자신의 어머니를 만났고, 자신의 사진을 찍어 'Life'의 마지막 커버사진으로 제출하였다는 사실이 꽤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숀은 커버사진의 윌터를 몇번만에 찍게 된 걸까?
윌터는 아름다운 순간에는 셔터를 안 누르는 숀의 모습을 떠올리며 더 큰 고요한 감동을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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