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9월 15일 추석, 충무로를 뜨겁게 달군 '밀정'을 보았다. 이번 포스팅은 밀정과 관련된, 그로부터 꼬리물린 생각들과 사실들에 관해 쓰여질 것이다.
1. 밀정을 보는내내 '누가 스토리에 반전을 주는 밀정일까?' 계속 질문을 하며 보여지는 스토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숨어있는 밀정만을 찾으려 애썼다.ㅋㅋ 알고보니 송강호가 독립군 편에 선 밀정이었다 알고보니 공유가 일본군 편에 선 밀정이었다 라는 극단적인 반전을 계속 공상하였지만 영화제목을 일차원적으로 반영한 반전 따윈 존재하지 않어 참 다행이었고, 송강호씨가 열연한 이정출이란 인물이 애국심 넘치는 영웅도 아닌, 명예와 야망 넘치는 친일파도 아닌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자신의 안정을 최우선시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2. 또한 지극히 현실적인 그도 본인이 역사에 어떤 인물로 쓰여질지 고민하고 의열단을 도우려는 결단을 내릴 때, 기차안에서 위급한 상황에 몰린 공유를 모르척하지 못하고 투덜대며 계속 도와주는 모습을 보일 때는 이정출이란 인물은 일반적인 관객들과 큰 괴리감을 주는 영웅이나 악당이 아니라 어렵게 정규직 채용에 성공한 나이 많은 이웃집 아저씨가 회사의 지도층이 싫어할 노조 가입을 주변 동료의 채근으로 갈등하는 그런 평범한 인물 정도로 다가왔다. 또한 송강호씨가 연기했기에 이정출은 나도 될 수 있고, 너도 될 수 있고, 쟤도 될 수 있는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3.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박희순씨와 중후반까지 등장하는 이병헌씨는 특별출연이라고 하기에는 무게감이 상당했고, 특히 이병헌씨는 특별출연이라는 타이틀이 정말 어색할 정도로 스토리에 존재감을 나타냈다. 그의 복잡한 사생활로 한 인간으로서의 이미지가 실추되어도 탁월한 연기력이 언제나 그런 부분을 상쇄시킨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번 연기에서도 그의 연기는 정말 깊이 있는 울림을 만들어 냈다.
4.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어디에 올려야 할지를 결정할 때가 옵니다. 이동지는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어떻게 올리겠습니까?"
5.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실패가 쌓이고 우리는 그 실패를 디딛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 가야 합니다." 이같은 대사와 나레이션을 누가 대신할 수 있었을까?
6. 한편, '밀정'을 보았다면 하시모토 역을 열연한 엄태구씨를 언급 안 할 수 없다. 필자는 엄태구씨를 어디서 봤는지 낯이 있었는데 기억을 못하였다. 그러다 좋아하는 김고은씨와 김혜수씨의 영화, 차이나타운에 출연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영이(김고은)를 말없이 지키며, 일영이를 죽이려던 홍주를 끝내 막았던 그 분이다. 영화를 보신 분은 대충 누군지 짐작가시는 분이 있을거 같고, 아직 안보신 분들은 한번 보시기를. 응답하라 1988의 고경표, 박보검씨도 등장하니. 그나저나 하시모토는 헤어 가름마, 콧수염, 적절하게 각진 얼굴형, 날카로운 하이톤 목소리 등이 매국노 일본인 순사 이미지와 어울리게 잘 그려졌고, 영화계에 다시한번 배우 엄태구를 알린 배역이 되리라 생각한다. 특히, 경성에서 김우진(공유)을 놓친 부하를 벽앞에 세워 놓고 소름끼치게 절규하며 따귀를 때리는 씬은 친일파의 얍삽함을 최고조로 보여준 연출이었다 생각한다. 마치 "친일파 새낀 사람을 때릴때도 어쩌면 저렇게 얍삽하게 소리지르며 얍삽하게 따귀를 때릴 수가 있지?" 라는 혼잣말이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7. 끝으로 필자는 영화 엔딩이 이정출이 건네준 큰 돈을 들고 조선총독부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청년 모습이 '계속되는 변절'로 그려졌다고 여겼었다. 왜냐하면 영상과 동시에 들리는 이병헌의 나레이션을 듣고 (5번 참고) 청년이 커다란 돈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굴복한 상황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선 잠시 후, 폭발 소리가 이어져 청년 의열단원이 총독부를 폭파한 엔딩이 맞다! 라고 엔딩값이 fix된 것 같은데 (필자는 상영관을 먼저 나와 못들었지만 ㅠㅜ) 이같은 엔딩이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결말이라면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운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 청년이 이정출에게 정채산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거사를 앞둔 자처럼 결연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냥 물건을 건네 받으러 온, 충심 넘치는 비서정도로 보였다.
- 송강호에게 큰 돈을 전달받고 헤어진 청년이 정채산에게 갔다가 다시 총독부로 폭탄을 가지고 가는 그림이라 상상하기 힘들다. 그보다 곧바로 총독부를 향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런 전개라 생각한다.
- 그런데 곧바로 총독부를 향한 이 청년이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설치한 후 살아나오고, 조선총독부는 그후 폭발한다는 설정은 더욱 상상하기 어렵다.
- 조선총독부를 폭발시키며 같이 동귀어진 하는 상황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정말 폭탄을 설치하러 갔다면 잡힐 경우를 대비해 송강호에게 받은 큰 돈을 어떻게든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 총독부를 향했다는 그림이 더 적절하다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영화에서 암시되지 않는다.)
- 다시 처음에 명시한 내용으로 돌아가 송강호 앞의 청년은 이제 곧 거사를 치룰,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만 동시에 죽음 앞에 두려움을 느끼는 자처럼 보이지 않았고, 또한 총독부 폭발임무를 수행하기 전, 이정출에게 돈을 전달받으러 갔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큰 돈을 들고 가다 변절하여 조선총독부에 들어가는 모습이 더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생각한다. 그래야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병헌의 나레이션도 훨씬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 그렇다면 필자는 듣지 못하였지만 영화 끝에 들린다는 폭발음은 무엇인가?? 감독이 연출한 결말이 "수많은 애국지사의 실패를 디딛은 결과, 일본의 핵심 건물인 조선총독부는 결국 폭파 되었다!" 라면 나에게 '밀정'의 결말은 조금은 받아들이기 어색한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8. 한편, 정장을 입은 공유의 기럭지와 옷맵시는 시대를 초월하여 빛을 발했다.
9. 그렇게 '밀정'을 압구정 CGV에서 본 후, 집에 돌아와서 TV를 켜니 '용의자'가 방송되었고 가족들과 용의자를 본 후, 공유의 영화배우로서의 커리어가 '용의자'를 기점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액션신과 특수부대원으로서의 진중한 연기를 보면 도무지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의 찌질한 일진, '커피프린스'의 금수저를 연기한 사람과 동일 인물임이 잘 믿겨지지 않았다.
10.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남은 시간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고, 영화감상을 이어가기로 합의를 봤다. 영화는 부산행으로 결정하였고, 필자는 부산행을 두 번째 감상하며, 공유가 출연한 영화를 하루 3편 연달아 감상하며 부산행에서 펀드매니저로 연기한 공유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그러고보니 공유는 올해 블럭버스터급으로 홍보된 영화 두 편의 주인공이다!)
11. 부산행에서 공유와 마동석 일당들에게 문을 안 열어주며 끝까지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보여준 좀비보다 더 나빠 보이는 인간을 연기한 김의성씨는 '용의자'에서도 화학무기를 팔아먹으려 했던 조성하씨의 상관역으로 출연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남을 계속해서 죽이며 혹은 남의 목숨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목숨만을 지키려한 김의성씨의 연기를 보며 극에 더 몰입할 수 있었고, 비슷한 씬에서 보인 소희의 눈물, 고함연기의 어색함을 그의 숙련된 연기가 잘 보완해주었다고 생각한다.

12. 17일에는 TV에서 방영한 '암살' 을 시청하였고, 암살을 두 번째 감상하며 이정재씨가 연기한 염석진이란 인물이 일본군의 밀정이었다는 영화 속 대사를 듣고, 밀정이란 단어가 '암살'에서도 여러차례 등장했다는 것을 '밀정'을 본 후, '암살'을 보며 깨달았다. 참, 김의성씨는 '암살'에서도 강인국(이경영) 집, 집사역을 연기하였다. 안옥윤의 쌍둥이 언니가 죽은 후, 안옥윤이 언니행세를 하며 집에 들어와 집사를 죽이기 전까지.
13. '밀정'을 보고 '암살'을 다시 보니 유사한 점이 보였다. 암살에선 김원봉(조승우)이 의열단 리더로 등장하고 밀정에선 정채산(이병헌)이 등장하는데 내부자들을 보고 느꼈던 것 처럼, 두 배우가 동일 선상에 나란히 놓일 때, 나는 이병헌의 연기에 좀 더 나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묵직한 마스크와 목소리에 조승우가 상대적으로 더 여리여리하게 느껴져서 묻히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타짜'의 고니역에 이병헌이 연기하는 건 상상히 잘 안되고, '올인'의 김인하역을 조승우가 맡어 송혜교와 키스신을 하는 장면도 잘 상상 안된다. 둘다 연기를 워낙 잘했기에 그 밖의 그림이 잘 안그려지는 것 같은데 암살의 김원봉을 이병헌이 연기하여 조진웅, 전지현과 거사 전 사진을 찍는 장면도 상상하기 어렵고, 조승우가 정채산 역을 맡어 송강호에게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어떻게 올릴 것이냐고 묻는 장면도 상상이 잘 안된다. 그만큼 훌륭한 두 배우 모두 주변인물과 잘 조화될 수 있는 최적의 자리에 특별출연하신 것 같다.

14. 마지막으로 '암살'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배신자 염석진을 처단하기 전, 왜 배신했었냐는 물음 앞에 염석진은 대답한다. "몰랐으니깐... 해방될지 몰랐으니깐.." '밀정'의 김우진(공유) 친구 조회령(신성록)도 해방이 이루어지리라 믿지 못해 일본의 밀정이 되버렸다. 그렇다면 염석진(이정재)과 조회령(신성록)은 배신자 유전자를 가져 배신자가 되었고, 나머지 인물은 독립군의 유전자를 가져 끝까지 독립군으로 남게 된걸까? 무엇이 그들이 역사에 이름을 올릴 때 그 위치를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으로 바꾸어 버린걸까?
15. 참, 16일 저녁에는 덕혜옹주도 보았고, 17일 암살을 보기전에는 인천상륙작전도 보았다. 이번 추석 시청한 영화를 모두 나열하면 밀정, 용의자, 부산행, 덕혜옹주, 월드워Z, 인천상륙작전, 암살 이다. 덕혜옹주는 음, 중간에 보다 졸아서 코멘트를 최소화하겠다. 인천상륙작전은 영화에 대한 최악의 평을 자주 들어 볼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는데 사촌형이 직접 관람 후, 괜찮다는 얘기를 해줘서 보게 되었다.
16. 인천상륙작전은 영화 초반부터 끝판왕 아빠 리암니슨이 출연하고, 끝판왕 악당 박성웅이 출연하자마자 급사하여 스피드있는 화면 전환으로 영화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리암니슨의 회상씬에서 보여진 인천상륙작전을 그가 계속 주장하고 있는 숨은 취지를 동료들에게 설파하기전까지. 죽을 수도 있는 전선을 상관의 명령이 없어 계속 지키고 있다는 16세 한국 군인의 태도와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그의 의지에 감동하여 인천상륙 작전을 강행하려 한다는 ㅋㅋ. 아 진짜, 이부분은 다시봐도 정말로 웃기는 부분이다 ㅋㅋ 왜 다른 상륙지가 아닌 상륙에 열악한 조건을 가진 인천을 상륙지로 선택하려하냐는 질문이 나온 씬이었는데 그에 대한 대답으로 위 회상씬이 등장하니 정말 한숨이 나오고, 화가나다 화가 안나는 어이가 없는 장면이었다. ㅋㅋ 아, 왜 하필 인천이냐? 왜 하필.. 인천을 상륙지로 정하냐? 란 질문이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알려야할 중요한 질문이라면 그에 대한 대답이 저것 밖에 없었을까? 정말 림계진의 말처럼 맥아더는 차기 대권주자가 되기 위해 영웅이 될 시나리오가 필요했고, 영화에서는 그걸 액면 그대로 말하기가 곤란해서 차선으로 넣은 씬인가? 라는 생각도 들면서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인 인천상륙작전의 근거를 저런 감성팔이로 확보하려는 시도가 영화의 질을 형편없이 떨어트리는 장면이라 생각하여 참 열받고도 아쉽다는 생각이 연거푸 들었다. 한편, 이정재와 이범수의 연기는 탁월했고, 이범수는 악당대장역을 또 한차례 훌륭히 소화했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정우성만큼 빛난 신의 한수, 주인공 윤계상보다 빛난 드라마 라스트에 이어. 풍채는 작지만 박성웅과는 또 다른 악당 분위기를 제대로 연출하는 광기어린 눈빛과 독한 발성 연기가 탁월한 연기자라 생각한다.


# 흥미넘치던 인천상륙작전의 몰입감을 떨어트린 최악의 순간. 정말 노답이다 ㅋㅋ
17. 한편, 영화초반 림계진(이범수)이 장학수 (이정재)의 신분을 의심하며 목의 상처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려 할 때, 그 부분까지 보완하여 림계진을 속힌 이정재의 모습이 암살, 밀정을 통틀어 가장 스파이다운 스파이, 밀정다운 밀정의 태도를 갖췄다고 박수 쳐주고 싶었다.

18. 결론적으로 9월 17일 기준, 누적 관객수 558만명을 기록중인 '밀정'은 한국 영화계에 암살에 이어 굵직한 족적을 남길 것 같은 한국 일제 점령기의 스토리를 다룬 영화다. 그러나 내게는 기대보다 조금은 아쉬운 영화였고, '인천상륙작전'은 기대보다 조금은 재밌었던 영화였다.
19. '밀정' 의 영어 제목은 'The Age of Shadows' 이다.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사전을 열어 Shadows의 뜻이 그림자인지 어둠인지 알아보았다. '그림자' 라는 뜻은 가산명사로 쓰일 수 있고, '어둠'이라는 뜻일 때도 가산명사가 쓰일 수 있는 것 같다. 다시말해 '그림자의 시대' 또는 '어둠의 시대'가 모두 영어 제목을 번역한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후자일 경우, 필자가 원하던 엔딩은 더 적절한 형태가 될거라 생각한다. ㅋㅋ 아무튼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던 간에 영어 제목의 의미가 '밀정'이라는 제목보다는 나을 것 같다. 왜냐하면 제목이 '밀정'이 되어 버리면 계속 밀정이 누구일까? 라는 생각에 지배되어 스토리에 온전히 몰입하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한국어 제목을 '밀정'외에 다른 것으로 정한다면 (문자 그대로 'The Age of Shadows' 라고 영제를 쓰기는 곤란하니까.. 그런 사례가 있었던가..??) 무엇이 적절할지는 모르겠다. 직역하여 '어둠의 시대' 라는 제목은 너무 진부하고.
20. 최근 빅히트한 한국영화를 살펴보면 그 소재가 모두 한국의 근대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펙타클한 1900년대 전후부터 6.25 까지의 사건들은 세계 열강의 이권다툼에서 야기되고, 해소되는 사건들이 많았기에 국제적으로도 이목을 끌만한 영화소재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5년의 '암살', 2016년의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밀정'이 그랬듯이. 사실 좀 더 오래전에는 '태극기 휘날리며', '고지전', '포화속으로' 등등의 영화도 있었다. 아무튼 이제 필자가 보고 싶은 영화 소재는 한국 근대사의 특수한 상황속에서 벌어진 '사건'과 '사건명'이 아니라 '인물'이다. 특히, 한 인물의 영웅적 면모가 아닌 인간적 면모가 보고 싶다. 예를 들어 영웅 안중근의 모습보다 무엇이 우리가 흔히 아는 영웅 안중근을 만들었을까? 안중근이 약지를 자르고 용맹하게 일본군에게 저항하는 모습 이면에는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들이 없었을까? 실제로 안중근의 아들의 삶은 부친의 삶과는 정반대로 친일파였다고 하는데 어렸을 적, 일본군으로부터 일본에 저항하던 '안중근'의 아들로서 안준생 본인이 받은 핍박과 상처는 도대체 누가 보상해줄 수 있었던 것일까? 보상해줄 수 없었다면 그 모든 아픔 가운데 행해졌던 그의 모든 선택들에 대해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필자는 이제 보고 싶다. 새로운 인물과 인물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끝으로 새로운 인물 한명만 추천하고 싶다. EBS 역사채널에도 소개된 인물로 우당 이회영과 그의 일가이다. 1910년 독립운동을 위해 한반도를 떠난 인물로 사실 그의 집안 자체가 조선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명문가였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보장된 신분과 몇 대에 걸쳐 풍족하게 쓸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나라의 독립운동을 위해 고향을 떠나 타지로 간 우당 이회영과 그의 일가의 생애를 영화로 꼭, 보고 싶다. '암살'의 속사포가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라고 소개되는 장면이 몇 차례 등장하는데 그 독립군 양성학교를 설립한 인물이 바로 우당 이회영이다. 그의 삶을 돌아보면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인물이었다. 사실, 그 시절 그는 그 누구보다도 기득권 세력에 속한 인물이었고, 나라가 위험에 처할 땐,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나라를 위해 모든 걸 쏟았던 인물이다. 그의 삶을 통해 보수적 계층에 속했던 인물이 그가 속한 사회에 대해 헌신하는 모범적인 사례를 발견하고, 한국근대사에서 이같은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와 긍지를 느낀다. 나이가 들수록 '나쁜 것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진보적 태도' 보다 '좋은 것을 지켜나가도록 애쓰는 보수적 태도' 가 고착되는 필자에게도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후대에 보인 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논쟁은 기득권 층에서 솔선수범한 그의 결정과 실제적 행동 앞에서 어떠한 부정적 의미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