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에서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라는 코너가 있어 성경에 대해 궁금한 부분을 물으면 그에 대한 설명을 매주 일요일에 발행되는 주보에 넣어준다. 이번주 질문은 아래와 같았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설은
"거듭난다는 말은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물론 육체적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성령님은 그 사람 안에 들어가 거주하게 되십니다. 성령님이 인간의 마음속에 계신 그런 상태를 거듭난다고 말하며, 그런 사람을 구원받은 사람, 거듭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
사실 이같은 설명은 한국 기독교의 장로교-통합 측의 일반적인 설명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도 동의하는 바다. 다만 이 글을 읽으면서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1)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성령님은 그 사람 안에 들어가...
2)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 성령님은 그 사람 안에 들어가...
3)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 성령님은 그 사람 안에 들어가...
아마 주보에 적힌 설명은 사도 바울의 로마서 10장 9절~10절을 쉽게 풀이하며 작성한 설명이라 생각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 9~10)
다만 내가 궁금한건 A라는 사람이 기독교 신앙적으로 유일신에게 구원을 받을 때의 과정에서 그 시간적 간극이 1번, 2번, 3번 중 어느 것에 가까울까냐이다. 즉, 시인하고 믿으면 곧바로 성령님이 A에게 들어가 내주하여 거듭난 상태가 되는것이냐? 아니면 시인하고 믿은 후, 3일의 시간이 지나야 아니면 특정한 시간이 지나야 성령님이 A에게 들어가 내주하여 거듭난 상태가 되는것이냐? 이다.
내가 믿고 있고 있는 결론은 그건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특정한 공식이나 특정된 소요시간은 없다라는 것이다. 1번처럼 일어날 수 있고, 누군가에는 3번처럼 늦게 그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건 들어가는 주체에 달려 있는 것이기에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저 말을 하기 전이나 마음으로 믿기로 결심하기 전에 필요한 전제는 있는 것 같다. 그건 A에게 거짓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진실로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기로 결정해야 비로소 최소 전제가 확보되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주 또는 구주라는 뜻이 구원자 인데 나를 나에게 부정적인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기에 주님 또는 구원자 주님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 아니가? 즉, A에게 어떤 문제가 먼저 있어야 하고, 스스로 해결 못하고, 누구도 해결 못함을 인정할 경우에서 어떤 존재가 그것을 해결해준다면 그는 A에게 A의 삶에서 유일한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아무 맥락없이 A가 로마서에 쓰여진 대로 마법의 주문처럼 입으로 읊으며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기로 결정하면 구원에 이른다는 말이 로마서의 저 말씀의 뜻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가 분명한 문제 가운데 있고,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도 해결 못해주는 상황임을 알고, 스스로 인정해야 비로서 로마서 9장 9절 말씀의 첫부분에 위치하는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의 문제를 뭐라고 규정할까? 인간이 겪는 모든 문제의 본질을 뭐라고 규정할까?
나무: 뿌리 -> 열매
인간: 죄성 -> 죄
죄성 =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
성경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죄성을 갖고 있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고 말한다.
죄를 지었기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막 태어난 아기가 무슨 죄를 짓는단 말인가? 성경은 사람이 죄를 범하는 본질적 이유가 죄성을 가진 죄인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A의 예를 들면 현대 사회에서 죄를 지으면 국가에서 정해진 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데 죄지은 적 없이 성경이 말한대로 착한게 산 모태신앙 A에게 성경이 죄인이라 규정하면 거부감부터 드는게 사실이다. 믿는다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인정하기란 쉬운일이 아닐 것이다. 주 5일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매주 일요일 교회에 나와 6시간 이상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겐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고, 평일엔 새벽기도를 하고, 매일 5 page 씩 성경을 읽는데 자기가 믿는 성경이 자기를 죄인이라 규정함을 어떻게 쉽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 그래서 여러 이유로 나는 성경이 말하는 죄인 또는 죄성을 하나님과의 분리라고 말하고 싶다. 성경에 의하면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 하나님과 아담은 분리되었고 그 후손 또한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로 태어나고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통해서 성령님이 인간에게 다시 내주하시면, 즉 거듭나면 하나님과 다시 하나인 예전처럼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메세지고, 기독교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거듭난 자에게는 현세에서 내세에서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평안이 주어진다니까.
한편, 거듭난자들에겐 이것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이제 성경이 약속한 평안한 상태로, 평안해질 것이라 믿음으로 세상을 좀 이롭게 만들도록 애를 써야한다. 바닷물의 소금처럼.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고, 구제하며. 또한 내 가족과 친구와 더 나아가 타인과 사회와 국가와 인류에게까지 기독교적 가치를 경험하고 획득한 자로서 무언가 좋은 것을 반환할 의무가 생긴거다. 성경은 이런 행동에 대한 상급이 주어질 것이라 약속하니 의무이고 또한 이자가 큰 예금이라고도 생각되어진다.
끝으로 성경에서 묘사되는 하나님의 성격은 뿌린대로 거두시는 공정한 분이시고, 약속한 것을 지키시는 분이시고, 인간을 사랑하셔서 아들인 예수님을 험한 세상에 보내신 분이시다. 따라서 성경에 쓰여진대로 언젠가 세상의 끝날에 인간의 삶을 판단하실 때, 거듭난자와 아닌자를 구별하여 거듭난자는 그에 맞는 상황들을 고려하여 판단하고, 아닌자는 아닌자의 여건들을 고려하여 공정하게 판단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거듭난 후의 삶에서도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하심을 여전히 구하고 의지하며 새 삶을 살고, 조금이라도 더 성경대로 살도록 노력하며 애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삶의 방식이 성경이 말하고 원하는 기독교인의 삶에 더 가까운 모습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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