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뒤늦게 검은사제들을 보았다. 국산영화로서는 다소 생소한 '엑소시즘'이란 소재를 택한 영화였는데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게 스토리가 이어졌다. 우선, 인간이 악마에 씌인다는 소재의 스토리 흐름은 보통 다음과 같다.


1. 한 인간 안에 악마가 들어감 (악마 등장)

2. 그 인간의 괴이한, 초월적인 육체적, 정신적 변화

3. 주변 인물의 죽음

4. 죽음.. 죽음.. 죽음..

5. 퇴마사 또는 주인공의 악마퇴치 사명

6. 퇴마사의 죽음 또는 악마의 죽음 (아니면 악마의 목표 좌절)


엑소시스트, 오멘, 콘스탄틴, 엔드 오브 데이즈 등의 악마 등장 영화들은 대부분 서양영화들이다. 그래서 그 배경이 대부분 기독교이다. 이를테면 기독교 성경에 쓰인 구절들을 모티브로 스토리가 진행되거나 적어도 그 안에 등장한 선과 악의 대립각이 영화에서 유사하게 보여진다. (기독교에서 짐승을 (=악마) 상징하는 숫자 666, 신의 침묵 중 악마와 천사의 대결, 악마를 쫓아내는 능력자들의 능력기반이 기독교 성경구절, 그리고 이도저도 안되면 예수의 삶 처럼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악마를 이세상에서 또는 그 인간으로부터 물리치는 것 정도가 위 영화들의 소재와 퇴마방법이다.)

 

특별히 위 영화들을 기독교적 영화다 아니다라고 구분할 생각은 없다. 기독교적 영화란 기독교의 핵심메세지가 영화를 통해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영화의 배경 또는 소재가 기독교적 색깔을 안 띄어도 충분히 그 메세지를 녹인 영화도 많다고 생각하고, 아무리 기독교적 내용이 겉에서 가득 보여도 기독교적 영화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강동원은 왜 도망갔고, 다시 돌아왔을까?" 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강동원의 양 발을 내려다 보는 장면을 많이 보여주는데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강동원의 트라우마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강동원의 오른쪽 발에만 신발이 없는 이유는 사나운 개에 물려 손을 뻗어 오빠의 발을 붙잡는 여동생의 살려 달라는 외침을 뿌리쳤기 때문인데 이 죄의식이 영화 속 강동원을 지배하고 있고, 이 트라우마의 발견, 영향, 극복이 영화의 스토리를 지배한다.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맥주도 몰래 마시고, 신학교 강의시간에 만화도 보고, 교수님과도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강동원의 밝은 캐릭터는 영화 중반, 짖고 있는 개를 보며 과거를 회상할 때, 꿈에서 기숙사 자기 방에 뛰어든 개를 죽일 때, 그 죽은개가 자기 동생으로 보일 때 점차 두려움과 불안감에 찬 내면을 드러낸다. 그리고 마침내 엑소시즘이 행해지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강동원은 악마가 깃든 육체를 죽이려하던 김윤석의 목을 조르며 엑소시즘을 방해하고, 결정적인 위기 상황에 봉착한다. 아마도 악마를 쫓아내려 그 육체를 죽이려 목을 조르고 있던 김윤석이 '소녀'를 죽이고 있는 '개'로 인식되어 두 눈을 부릅뜨며 갑자기 같은 편인 김윤석의 목을 졸랐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후, 악마 또한 그의 두려움과 죄의식을 이용하여 엑소시즘의 공간에서 강동원이 다시 도망쳐 물러나게 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무서워서 뒤를 보며 앞을 향해 정신없이 도망치던 강동원이 점차 멈추며 걷자 저편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있는 남자아이와 손잡고 있는 여자아이가 보인다. 남자아이를 보니 오른쪽 신발이 없는 것이 예전의 자신과 같고, 그 옆 여자아이는 자세히 보니 자신의 여동생이다. 그러며 자신의 두 발을 내려다 보니 이번엔 왼쪽 신발 마저 벗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시 여자 아이를 보니 이번에는 눈물을 글썽이던 여자아이가 자신에게 미소짓기 시작한다. 개에 물린 여동생의 손길을 뿌리쳐 혼자만 살려고 했던 자신을 여동생이 미워하고 저주할 줄 알았는데... 지금, 자신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마치 괜찮다는 듯 미소로 대답하고 있는 동생을 본 후, 강동원은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고, 자신이 또다시 도망쳤던 그곳으로 되돌아간다. 돌아간 그는 김윤석에게 자신은 빚이 있어 돌아왔다 하고, 그에게 김윤석은 짐승은 자기보다 작은 상대에게만 덤빈다며 예전의 동생 일이 강동원의 잘못이 아니라고 한다. 

 

이후, 영화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고, 결의에 찬 강동원은 악마를 쫓아내는 찬양인듯한 아름다운 노래로 김윤석을 거든다. 끝으로 악마를 퇴치하기 위해서 악마가 되어선 안되나보다. 영화초반 한국 출장 온 외국인 사제분들이 뺑소니를 치지 말고, 여주인공을 살리려 했으면 어땠을까. 악마퇴치만큼 중요한 것이 한 사람의 삶 아니던가? 또한 악마는 언제나 인간의 두려움을 파고들기에 두려운 존재일 수 있겠지만 기독교 세계관에서 악마의 반대말은 천사라는 점을 늘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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